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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1

휴엔하임SG 2020. 11. 19.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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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그는 사브를 몬다. 그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마치 그 사람은 강도고 자기 집게손가락은 경찰용 권총이라도 되는 양 겨누는 남자다. 지금 그는 일제 자동차를 모는 사람들이 흰색 케이블을 사러 오는 가게의 카운터에 서 있다."

 내가 '오베라는 남자'를 처음 접한건 군대에서였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듯 시간은 많았고 그 시간을 사용할 곳은 적었던 시기였기에 자연스레 책에 빠져 들게 되었고 우연히 접하게된 수많은 책들중 한권이 바로 '오베라는 남자'였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오베'라는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와 그 남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주변인들에 관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융통성 없고 고집강한 '오베', 그리고 그런 그의 상식선에선 이해할수없는 이웃주민들. 그들이 얽히고 설키며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굉장히 오묘한 매력을 가졌다. 오베는 주변 사람들과 세상을,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세상은 오베를,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챙겨주고 어울리며 살아가는 그와 그들의 이야기는 은은하게 기억에 남아 이따금씩 책을 펼쳐 같은 부분을 몇번이고 다시 읽게 만든다.

 "오베는 평생 자명종이라고는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는 6시 15분전에 눈을 떴고, 그게 그의 기상 시간이었다."

 "그들이 이 집에서 살았던 40년 가까이, 오베는 매일 아침마다 커피 여과기를 사용했고, 늘 정확히 같은 양의 커피를 내렸으며, 그 커피를 아내와 함께 마셨다. 컵 두 개에 한 잔씩 따르고 나면 주전자에 한 컵 분량이 남았다. 그보다 많지도 적지도 않았다."

 오베는 지독하게도 강한 고집을 가진 할아버지다. 반복과 규칙을 좋아하며 정해진 틀을 벗어나는 해프닝을 싫어한다. 모든 것들이 정해진대로, 예상한대로 흘러가는것이 곧 올바른 세상이라고 믿는 톱니바퀴같은 사람이다.

 "쓰레기통. 사실 따지자면 그건 오베가 책임질 일은 아니었다. 그는 최근 이 동네에 몰려든 SUV를 타는 패거리들이 밀어붙인 '가정용 쓰레기를 분리해서 놔둬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애초부터 단호히 맞서왔다. 그렇기는 해도 일단 쓰레기의 종류를 나누자는 결정이 내려진 이상 누군가는 그게 제대로 이뤄졌는지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이미 결정된 변화들에 대해서도 그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무작정 거부하고 따르지않는 막무가내식 인물은 아니다. 좋든 싫든, 본인이 원한 결과이든 아니든 이미 정해진건 정해진거고, 변한건 어찌 되었든 지켜야하는 새로운 규칙임을 아는 사람이다.

 "융자는 한 푼도 없다. 유행에 따라 옷이나 사 입는 사람들에게 그거 하난 확실히 말해줄 수 있었다. 이젠 사방이 다 융자였다. 다들 그게 인간이 가는 길인 줄 알았다. 오베는 모기지를 갚았다. 의무를 다했다. 직장도 다녔다. 병가라고는 한 번도 낸 적 없었다. 자기 몫의 짐을 짊어졌다. 책임도 어느 정도 졌다. 아무도 더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는 정의와, 페어플레이와, 근면한 노동과, 옳은 것이 옳은 것이 되어야 하는 세계를 확고하게 믿는 남자였다. 훈장이나 학위나 칭찬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래야 마땅하기 때문이었다.

 오베는 남에게 기대지 않는 사람이다. 그에겐 그게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에 본인의 힘으로 일하고, 본인의 능력으로 살아가며, 본인이 가질 수 있는 것들만 가져왔다. 그런 그가 바라보기에 세상은 너무나 많은 무책임한 '현대인'들로 북적거린다.

 "어떻게 트레일러도 후진 못 시키는 사람이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지? 오베는 자문했다. 어떻게? 오른쪽과 왼쪽 개념을 세우고 나서 핸들을 돌리는 게 뭐가 어렵다는 거지? 이런 인간들이 자기 인생은 대체 어떻게 꾸려나가는 거지?"

 "오베는 이 차가 오토라는 것을 확인했다. 암, 그럴 줄 알았어. 이 얼간이들은 차를 제대로 후진시키기는커녕 제 손으로 직접 몰려고도 하지 않으니까. 오베는 궁금했다. 주차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 투표권은 가져도 정말 괜찮은 건지 의심스러웠다."

 "하루 종일 점심이나 처먹었으면 하는 인간들로 나라가 꽉 찼다."

 "사람들이 가진 건 죄다 똥덩어리뿐이었다. 신발을 스무 켤레나 갖고 있으면서도 구둣주걱이 어디 있는지는 전혀 모른다. 집 안을 전자레인지와 평면 TV로 채워놓았지만, 누군가 칼로 위협하며 대답을 강요해도 콘크리트벽에 쓰는 플러그가 뭔지 대답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1889년에 에펠탑을 세웠는데 이제는 휴대 전화를 재충전하기 위해 휴식 시간을 갖지 않고서는 1층짜리 집의 빌어먹을 도면 하나 못 그려냈다."

 " '그러니까 다시 말해, 당신 운전면허가 없다?'

 '네.'

 '농당이 아니다?'

 '네.'

 '면허를 상실한 거요?'

 '아뇨. 따본 적이 없어요.'

 오베의 두뇌가 이 정보를 처리하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에게 이건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오베에게 현대는 스스로를 책임지지 못 하는, 한명의 사람으로써 너무나 당연히 갖춰야 하는 것들을 갖추지 못한 무언가 결여된 인간들로 꽉 차버린 시대다.

 "다음 날 그는 철도 회사 경리부로 가서 그 달에 남은 날만큼의 임금을 반환했다. 경리부 여직원은 이해를 못했고, 오베는 아버지가 16일에 죽었기 때문에 남은 14일 동안 직장에 출근해서 일을 할 수 없게 된 게 분명하지 않느냐며 설명을 해야 했다. 아버지는 월급을 선불로 받았고, 14일치 임글을 넘치게 받은셈이므로 오베가 잔액을 돌려주러 온 것이었다."

 지독히도 냉정하고, 이성적인 오베. 마치 감정이 결여된 로봇과도 같아 보이는 그. 본인의 사정과 감정은 철저히 배제된채 정해진 '규칙'은 어찌됐든 지켜야 한다고 믿는 사람.

 "그는 자기가 주택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마도 그것들이 이해할 수 있는 존재라서 그랬으리라. 주택은 계산할 수 있었고 종이에 그릴 수 있었다. 방수 처리를 해놓으면 물이 새지 않았고, 튼튼하게 지어놓으면 무너지지 않았다. 주택은 공정했다. 공을 들인 만큼 값어치를 했다. 안타깝게도 사람보다 나았다."

 "그는 직선과 명료한 결정을 좋아했다. 그게 그가 늘 수학을 좋아하는 이유였다. 수학에는 정답 아니면 오답만 있었다. 수업 중에 '네 입장을 토론해보자'며 사기를 치려 드는 히피 같은 과목들과는 달랐다."

 "오베는 옳은 건 옳은 것이고 틀린 건 틀린 것이길 원했다."

 추상적이고 감성적인걸 이해 하지 못하는 이 '오베' 라는 남자는 휘어지기보단 부러지는걸 선택 할 것만 같은 곧고 단단하게 뻗은 뿌리를 가진 나무같은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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